| 설교자 | 장성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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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날짜 | 2010-01-08 |
| 성경구절 |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
바른 신앙생활은 바른 고백과 바른 실천을 요구합니다. 바른 고백과 바른 실천을 위해서는 믿는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우리 믿음의 대상이자 구원의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보여 줍니다.
1. 하나님의 어린 양
그러면 여기서 히브리 사람들이 의미하고 있는 어린 양의 개념은 어떤 내용입니까? 첫째, 어린 양이란 유월절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대해서는 출애굽기 1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 10가지 재앙이 나타나는데, 마지막 재앙이 장자가 죽는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집은 그 재앙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작업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이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한 사람들은 살았지만, 믿지 않아서 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결국 이 말을 믿고 따른 사람들은 사람들은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서 살게 된 것입니다. 즉, 문설주에 바른 피는 생명이요,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피를 발랐다는 것은 벌써 죄값으로 이미 죽었기 때문에 재앙이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 안에서 내가 벌써 죽었으므로 재앙이 유월되는, 즉 넘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 양을 믿는다는것이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어린양의 개념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로써의 양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피 흘림을 통한 죄 사함의 제사법을 제정하시고 장차 완성될 구원의 방식을 예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흠 없는 어린 양이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 죽는 방식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9장을 보면 온 백성의 죄를 위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린 양을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긍휼이 온 백성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또, 레위기 4:24을 보면 속죄제를 드릴 때 제물인 어린 양의 머리 위에다가 죄인은 손을 얹고 회개 기도를 합니다. 즉, 사람이 지은 죄를 어린 양에게 전가시키는 의식으로 회개 기도가 끝나고 나면, 양을 그대로 잡아서 제단에 불을 지릅니다. 이것은 죄인 대신에 양이 죽는 의미로써, 예수께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믿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사실, 즉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바로 믿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흠 없는 완전한 제물입니다. 그분의 대속을 믿는 자들에게 완전한 죄 사함을 얻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성인이나 교훈자쯤 여기지만, 지금 요한이 증거하는,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은 바로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이시요, 인류의 구세주로서 우리 모두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2. 하나님의 아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면 세례 받기 전에는 성령이 없었으며, 예수님께서 이제 처음으로 성령을 받으셨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간혹 성도들도 보면 예수를 믿은지 10년이나 되면서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흔히 성령이라고 하면 오순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할 때도 성령은 있었습니다. 아니, 베드로가 예수의 부름을 받고 따라 나설 때에도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부터 성령을 받았습니까? 지금 세례받으시는 순간부터입니까?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잉태될 때부터 성령으로 잉태되셨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나실 때부터 성령으로 나셨고 성령 안에서 사셨으며, 성령과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세례받으실 때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나타났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간단히 설명하면, 기능적 차이입니다. 즉, 세례 받기 이전의 성령은 한 개인에게 역사하는 성령이며, 이제 역사하는 성령은 공새애로 이끄시는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개인으로 설명하면, 내 마음 가운데 중생의 역사가 이루어져 구원받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성경을 이해하고, 선한 생활에 힘쓰며 살아가는 이 사람은 성령을 받은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가면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복음을 전하고 싶어지고, 내 생활의 최우선이 복음 전도가 되어 그동안 하던 일은 다 그만 두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는 공적인 생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second decision’이라고 합니다.
즉, 처음 중생하는 역사가 첫째 결단이고, 두 번째 결단이 공생활의 시작으로 비둘기 같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쨋든 예수님은 죄를 사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영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그 주님 앞에 우리는 마땅히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합니다.
3. 메시아
후일 베드로는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셔서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고 말했습니다(행 10:38).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요,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경배하는 자에게 죄 사함과 하나님의 자녀 됨과 성령의 내주가 이뤄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이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죄 사함을 얻고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진정한 메시아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