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발굽에 채여서 살 확률 -- 매일 살아숨쉼에 감사드립니다
조회 수: 596 2010-02-12 08:31말에 채였다고 하니까 혹시 승마했을까? 하는 오해를 받을 수 있어서, 제가 길가다가 말에 채여 죽을뻔했던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하긴 저처럼 일반사람이 말에 채일 일이 있겠습니까. 살면서..
이 이야기는 하도 많이 해서, 실은 이제는 별로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희집 남편말로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0번은 넘게 했을꺼라고 하는데..
중학교 졸업하고 아저씨 만나기전까지인 10여년동안도 했으니 대체 몇번이나 이 이야기를 했는지 세기도 어렵습니다.
지금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아주 심각했었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즐거워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잠시... "유머" 코너에 글을 써야할까?도 고민을 했습니다만 제일 무난한 '생활 속 이야기'쪽에 쓰기로 했습니다. 이야기가 조금 깁니다. 긴 글 싫어하시는 분들은 pass하셔야할거 같아요.
이야기 속으로...
제가 중학교 3학년때인 1988년에 과천에 서울대공원이 개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봄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올라가거나 코끼리 열차를 타면 되죠.
그런데 개장 당시에는 코끼리 열차가 없었구요. 그 길을 말이 끄는 마차가 다녔습니다. 신기하죠. 옛날옛날 이야기랍니다.
점심을 먹고 한적하게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던 저에게, 친구들이 와서 저쪽으로 같이 걸어가보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셋이서 같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필름이 끊어졌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갑자기 걸어가다가 필름이 휙 끊겼지요.
정신이 조금 들려고 했는데 누군가 저를 엎고 열심히 뛰는거였습니다.
주변에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이고요.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좀 차렸을때, 반친구들이 저를 보고 울고 있었습니다.
왜? 울어.. 하는데 머리가 좀 무거운거 같더군요.
그리고 정신을 또 잃었습니다.
정신을 찾았을때,
앰블런스 안이었고 담임선생님이 자꾸 말을 시키십니다. 집전화 번호 말씀해드리고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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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신을 차리니 수술실입니다. 그리고 제가 댓글에 쓴거처럼 의사선생님이 "내가 남자의사지만, ... 바느질 솜씨 좋다."면서 이름, 집전화번호, 학교 이름 등을 자꾸 물어셨어요. 한참 사춘기 소녀인데 머리를 꿰매느라고 밀어서 안됐다. 그렇지만 머리는 금방 나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부분마취를 하고 꿰매는거라서 통증은 없는데 머리를 한땀한땀 꿰매는 느낌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 다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래 정신을 잃었습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자는 것도 아닌 멍한 상태.
아마 죽으면 이런 멍한 상태가 되지 않을까 컴컴한 중에 무서웠습니다.
하룬가 이틀인가 의식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어느날 눈을 떴습니다. 봄이라 그런지 병실에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는 날이었습니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컴컴한 상태에서 깨어난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햇살이 그렇게 고맙고 좋은지 그때 뼈져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뜨고 정신을 되찾은 다음에..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된건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무그늘에서 일어나서 걷고 있었는데, 마차에 탔던 학생들이 마부아저씨에게 빨리 가자고 해서, 마부가 채찍을 휘두를 즈음에 하필이면 저와 친구들이 그 앞에 걷고 있었던거라더군요. 놀란 말이 갑자기 펄쩍 뛰다가 말발굽을 내리친게 하필이면 제 머리였구요. 그래서 머리 표피가 찢어져서 20바늘을 꿰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10일만에 퇴원할 수 있었지만, 제 옆에 있던 친구는 넘어져서 척추뼈가 다 나가서 거의 6개월 입원해있었습니다.
저를 등에 엎고 뛴 남학생이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었는데, 키가 180cm에 훤칠한 외모였다고 합니다. 자기 옷에 피가 다 묻는데도 저를 엎고(크.. 꿰 무거웠을텐데) 뛰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 그 오빠 소개시켜달라고 저한테 병문안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의 의식이 없이 누워있을때 신문기자와 방송사에서 들이닥쳐서
엄마가 울며불며 화내서 다 내쫓았는데(꼭 1년전인 중학교 2학년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더 흥분하셨던 모양입니다), 무심한 양반들이 TV와 신문에 '서울대공원 사고, M여중 3학년 이현주 사망, 한명 중태'라고 내보냈다고 하더군요. 제대로 확인이나 해보지. 당시에는 신문에 한자로 이름을 썼는데 하필 제 이름 석자는 너무 흔한 석자라서.. 정말 사망으로 보도가 되었나보더군요.
나중에 마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심판이 있어서 수원법원에 가기도 했습니다. 마부 아저씨가 무슨 죄인가요. 그냥 괜찮으니까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법원에 가서 사고 당시 현장 사진을 보았는데 한마디로 처참했습니다. 온통 보도블록에 피범벅이었으니까요.
저의 그 사고여파가 컸던건지 알 수는 없지만 이후로 마차는 사라지고 운송수단으로 코끼리 열차로 대처가 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내가 한참 민감할때인건 알겠지만 박박민 머리(왼쪽 머리 동그랗게 말발굽 자국만큼 밀었지요. 아주 이상.. 그쪽만 밀었으니까)는 바람을 쐬어줘야 머리가 잘 자란다고 하시면서 머리숱도 많은데 가르마를 바꾸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어떤 미장원 아주머니에 말씀으로는 머리 가르마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오른쪽 가르마인데, 가끔 제 왼쪽 가르마는 어떤 인생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퇴원하는 날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제가 1/3 확률이었다구요. 죽든가, 살든가, 아니면 이상해지든가.. 셋 중에 하나였는데 어쨌든 무탈하게 살아난거니까 신에게 감사드려야한다구요. 그리고 죽을뻔했던 사람이 살게된건 살아서 할일이 있다는 것이니까 감사드리면서 열심히 살라고 하시더군요. 바느질 솜씨 좋으시니까 옆에 머리 걱정말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20년 넘는동안 꿰맨 곳에는 머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머리결도 별로 좋지 않지만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휘날리는 일.. 그런걸 해보지 못했어요. 바람 많이 부는 날은 흉이 보일까봐 머리부터 부여잡는 습관이 생겼지요. 가끔 신경 안쓰고 누워서 자면;; 저희집 아저씨가 저의 땜빵자국들을 보게 됩니다. 미안하지요.
햇살 좋은 봄에는 기쁘고 좋아야하는데 다시금 그 소풍때의 날씨(날씨 정말 끝내주게 좋았었어요)와 기억이 떠올라서
멍..할때가 있습니다. 햇볕좋은 창문 바라볼때는 병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창문 생각이 나구요.
다들 학교가는데 나는 머리가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학교 가고 싶다.. 그 후로도 학교가 가고 싶고 뭐 좋고 그런건 아니었는데, 남들은 다 하는데 하지 못하는게 참... 답답하더라구요.
죽을뻔했는데 살게 해주셨으니까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일 매일 숨쉬고 눈뜨고 걸어다니고 움직일 수 있음에도 감사드립니다. 너무 당연한 것같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기적이고 감사드려야할 제목이잖아요.





나눠 주셔서 감사해요! 어려운 나눔이실텐데.. 사도 바울에게도 회복되지 않는 육체의 가시를 주셨지만 바울이 감사로 그것을 취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힘쓴 생각이 나네요.
사실은 저도 7살 때 그렇게 좋아하는 야구하다가 동네 형이 풀 스윙한 배트에 눈과 머리 중간을 맞아서 죽을뻔한 적이 있었죠. 조금만 밑에를 맞았으면 바로 실명이거나 위를 맞았으면 두개골이 깨졌을텐데 딱 절묘하게 그 중간에 맞아서 미라처럼 붕대 감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